우사단에 전시하기

우사단에 전시하기

잉어학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는 워크샵입니다. 잉어학교 1기의 주제는 ‘우사단에 전시하기’ 입니다. 먼저, 우사단의 주민을 포함한 잉어학교의 구성원이 평범한 우사단의 계단, 길, 방, 옥상을 활용해 공공 전시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냈던, 지내고있는 우사단의 이야기’를 주제로 참여 작가를 모집해 이곳에 전시를 열었습니다. 누구나 구경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전시를 통해 동네 분위기를 한층 활기차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방명벽>

사람들이 오며가며 흔적을 남기는 벽입니다. 전시공간과 동네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잉어학교 / 설치작품, 2019

<우사단로 간판 연작시 3편>

재개발예정이라는 화두가 만들어 낸 시로써의 기록, 혹은 기록으로써의 시. 문자언어로 어떻게 공간적인 참여를 할 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이 동네의 거리, 그 속의 간판으로 시를 써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미리내 / 천에 글씨˙사진 인화, 2019

<제목없는 시>

이천십오 년 십이 월부터 이천십구 년 칠 월의 지금까지 여기 살았다. 한남동에서 일 년, 보광동에서 이 년 반, 중간에 몇 달씩 다른 곳에 있던 걸 제외한대도 인생에서 두번째로 길게 산 집이다.

장소를 기억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여기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나는 떠날 수 없게 된다. 나의 공간이라 여기는 순간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서러워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들은 변한다. 필연적으로. 물리적인 요소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함께 지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진다. 나는 그걸 잡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다만 이제 나는, 내가 살던 시간이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와 계속 함께 간다는 걸 안다. 나는 어렴풋 불안하지 않다. 나는 이 공간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해서 결국엔 모든 것이 내게 스며들었다.

은용 / OPP 필름에 프린트, 2019

<fragment>

매일 빨간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곤 했다.

거의 건넜을 즈음 보이는 복잡한 동네.
때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곤 한다.

좋아하는 공간이 나에게 안겨다주는 안도감.
떠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

나의 20대 초반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나는 이곳에
왔고, 떠났고, 행복했고, 절망했고,
시도했고, 포기했고, 부서지고, 치유했다.

아직도 나의 파편들이 산발적으로 공간 곳곳에.

종연 / 설치작품, 2019

<메모, 2016-2017>

1 떠나온 곳은 잊혀진다. 하지만 다시 방문한다면 재생되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2 사라진 곳은 잊혀진다.

유달리 기억되는 건 강렬한 감정이 연관된 경우이며, 별다른 감정 반응이 없거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기억되지 않는다.
2016년 우사단에서 살았던 기간의 경험은 그곳에서 비롯된 단서들을 마주해야 재생되는 기억이 되었다. 이렇게 떠오른 기억은 대화, 몸짓, 분위기나 소리와 같은 많은 요소를 갖고 있지만, 사건이 생겨난 공간에 대한 기억은 흐릿한 배경으로 남게 된다. 나의 방, 친구들과의 집, 우사단으로 가려면 마주해야 하는 가파른 경사는 일상적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곳이, 특히 살았던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게 만든다. 이 감정과 함께 떠오르는 공간은 기억 속 가장 선명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그려진 공간 속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의 경험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같은 요소가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라면, 사라진다는 소식이 만들어내는 것은 전체 그림 속 일상의 모습이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발견한다.

수인 / 종이에 프린트, 201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재정비지구는 비정상성을 가두는 하나의 밀실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정상성의 원반에서 비정상적 대상들은 원반의 가장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원반 끝에 아슬아슬 매달린다. 동시에 원심력으로 인해 원반 밖으로 떨쳐지진 않는다.

재개발은 비정상성을 살해한다. 여느 밀실살인사건과 같이 칼을 휘두르는 이는 보이지 않지만, 잘리는 단면들은 선명하다. 난간 하나가 휘감은 수많은 이들의 생활습관, 눌린 계단이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몸은 해체된다. 동물이 얼굴 없는 고기가 되듯이, 살아남은 사람은 이름 없는 세입자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낡은 건물들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묶여있는 지금의 상황을 밀실로 보고 이 상황을 만든 거대한 범인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현장을 평면으로 포착하여 추적한다.

또한 이 작품은 방문자의 시각에서 우사단을 조명한다. 짧은 시간동안 머무는 방문자는 우사단을 순간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방문한 시간과 서 있는 위치 그리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우사단은 파편이 된다. 방문자가 가지는 우사단에 대한 파편화된 시각을 범죄 현장이 보여주는 손상된 증거와 파편으로 남은 흔적과 연결한다.

평면 속의 건물과 사람은 파편 또는 실루엣으로만 나타난다. 재개발이 거주자의 이름과 모습을 지우듯이, 방문자가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가기 때문이다.

평면에 그려진 장면들은 서로 만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 이는 우사단을 보는 방문자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접혀 있던 건물의 입면을 펼치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장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장소를 각도에 따라 전면과 후면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장면의 시간의 선후관계를 뒤섞기도 한다.

하늘 / 종이에 프린트, 2019

<Tangled Streets>

‘Tangled Streets’는 관객의 터치에 따라 우사단길의 상점과 스튜디오 건물들이 랜덤으로 배치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작업이다. 우사단길의 가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 왔다. 작업자 하은은 시간에 따른 가게들의 변화를 이미지로 기록하여, 관객들에게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가게들과 존재하는 가게들이 공존하는 거리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뒤얽힌 거리의 목격자로 만들고자 한다.

하은 /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2019

과나코 (2008-2029)

미래의 동물원은 어때야 할까요? 이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 대한 저희의 답입니다. 동물원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든 동물원의 동물들은 인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동물원을 제안하는 대신 동물원을 없애면서 동물을 가두기 위해 닫혀있던 동물원을 동물들의 묘지이자 공공의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바꾸어나가는 방법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공원이 될 동물원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합니다.

철창 속의 동물은 이미 야생성을 잃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그들을 자연으로 방류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일 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동물원은 연구와 관찰을 빙자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가둬진 채 자라온 동물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합니다.

우선, 동물을 관람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를 중단합니다. 사람들은 더는 동물들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동물원에 살는 동물들의 수명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에 이릅니다. 남은 생애 동안 그들의 우리는 최대한 본래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으로 조성됩니다. 숨을 거둔 동물들은 각자의 울타리 안에 묻힙니다. 묘지가 된 인공 서식지는 죽은 동물의 생활 환경을 설명해줍니다.

도시민에게 새로운 공공공간을 제공합니다.

동물원은 다양한 인공 서식지가 나열된 독특한 외부공간입니다. 넓은 외부공간이면서 도시의 다른 어떤 공간과도 다른 동물원을 점차 공원화하여 공공공간의 다양성을 확보합니다.

모든 동물이 다 묻힌 우리부터 공원이 됩니다. 온전한 묘지가 된 우리의 울타리를 따라 도시와 연결된 걷기 좋은 해자를 팝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얕고 넓은 해자를 파서 도시와 동물원의 경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처음 파는 해자는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할 정도로 깊고 한 사람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개방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해자의 깊이는 점차 눈, 어깨, 허리, 무릎 높이까지 얕아지고, 너비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넓어집니다. 사람들은 이제 해자에 걸터앉거나, 경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벼룩시장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생겨난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해자의 형태는 훗날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던 동물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추측할 수 있도록 하는 흔적으로 남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합니다.

동물원의 기능이 제거된 채 묘지로 변한 새장, 돌고래쇼장, 오랑우탄 정글짐과 관람객 동선은 지난날의 위계적 질서를 기록하고 동물들의 희생을 기리는 장소가 됩니다.

사람들은 해자를 통해 도시로부터 동물원 안으로, 예전에는 관람객들이 걷던 땅으로, 다시 비석과 같은 문을 통과해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동물원이 있던 자리에 남겨지는 것은 동물을 위한 묘지이자 사람들을 위한 공원입니다. 사람들은 동물들 대신 스스로가 가득한 우리를 바라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