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지붕

‘소통하는 풍선 지붕’은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서울마루의 새 얼굴입니다.

사람들의 사용에 따라 요동치는 풍선은 주변 어디에서 보더라도 한눈에 보이면서도 기존의 풍경과 맥락을 가리지 않습니다. 또한 애드벌룬과 짐볼 및 빈백은 조명, 그늘막, 장난감, 의자 등의 기능을 충족하는 동시에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풍선들로 이루어진 공원에서 시민들은 지나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는 것부터 짐볼을 튀기면서 놀거나 대규모의 공연을 관람하는 것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소풍 지붕’을 통해 서울마루는 시민의 상징적인 일상 공간이자 비엔날레의 구심점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사단에 전시하기

우사단에 전시하기

잉어학교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서,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는 워크샵입니다. 잉어학교 1기의 주제는 ‘우사단에 전시하기’ 입니다. 먼저, 우사단의 주민을 포함한 잉어학교의 구성원이 평범한 우사단의 계단, 길, 방, 옥상을 활용해 공공 전시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냈던, 지내고있는 우사단의 이야기’를 주제로 참여 작가를 모집해 이곳에 전시를 열었습니다. 누구나 구경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전시를 통해 동네 분위기를 한층 활기차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방명벽>

사람들이 오며가며 흔적을 남기는 벽입니다. 전시공간과 동네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잉어학교 / 설치작품, 2019

<우사단로 간판 연작시 3편>

재개발예정이라는 화두가 만들어 낸 시로써의 기록, 혹은 기록으로써의 시. 문자언어로 어떻게 공간적인 참여를 할 수 있을지 궁리하다가 이 동네의 거리, 그 속의 간판으로 시를 써봐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미리내 / 천에 글씨˙사진 인화, 2019

<제목없는 시>

이천십오 년 십이 월부터 이천십구 년 칠 월의 지금까지 여기 살았다. 한남동에서 일 년, 보광동에서 이 년 반, 중간에 몇 달씩 다른 곳에 있던 걸 제외한대도 인생에서 두번째로 길게 산 집이다.

장소를 기억하는 건 무서운 일이다. 여기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나는 떠날 수 없게 된다. 나의 공간이라 여기는 순간 나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서러워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들은 변한다. 필연적으로. 물리적인 요소들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함께 지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진다. 나는 그걸 잡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다만 이제 나는, 내가 살던 시간이 영영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와 계속 함께 간다는 걸 안다. 나는 어렴풋 불안하지 않다. 나는 이 공간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사랑해서 결국엔 모든 것이 내게 스며들었다.

은용 / OPP 필름에 프린트, 2019

<fragment>

매일 빨간버스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곤 했다.

거의 건넜을 즈음 보이는 복잡한 동네.
때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곤 한다.

좋아하는 공간이 나에게 안겨다주는 안도감.
떠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

나의 20대 초반이 여기저기 묻어있는.
나는 이곳에
왔고, 떠났고, 행복했고, 절망했고,
시도했고, 포기했고, 부서지고, 치유했다.

아직도 나의 파편들이 산발적으로 공간 곳곳에.

종연 / 설치작품, 2019

<메모, 2016-2017>

1 떠나온 곳은 잊혀진다. 하지만 다시 방문한다면 재생되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2 사라진 곳은 잊혀진다.

유달리 기억되는 건 강렬한 감정이 연관된 경우이며, 별다른 감정 반응이 없거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기억되지 않는다.
2016년 우사단에서 살았던 기간의 경험은 그곳에서 비롯된 단서들을 마주해야 재생되는 기억이 되었다. 이렇게 떠오른 기억은 대화, 몸짓, 분위기나 소리와 같은 많은 요소를 갖고 있지만, 사건이 생겨난 공간에 대한 기억은 흐릿한 배경으로 남게 된다. 나의 방, 친구들과의 집, 우사단으로 가려면 마주해야 하는 가파른 경사는 일상적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어떤 곳이, 특히 살았던 곳이 사라진다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게 만든다. 이 감정과 함께 떠오르는 공간은 기억 속 가장 선명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그려진 공간 속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의 경험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같은 요소가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일이라면, 사라진다는 소식이 만들어내는 것은 전체 그림 속 일상의 모습이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하고, 발견한다.

수인 / 종이에 프린트, 2019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재정비지구는 비정상성을 가두는 하나의 밀실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정상성의 원반에서 비정상적 대상들은 원반의 가장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원반 끝에 아슬아슬 매달린다. 동시에 원심력으로 인해 원반 밖으로 떨쳐지진 않는다.

재개발은 비정상성을 살해한다. 여느 밀실살인사건과 같이 칼을 휘두르는 이는 보이지 않지만, 잘리는 단면들은 선명하다. 난간 하나가 휘감은 수많은 이들의 생활습관, 눌린 계단이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몸은 해체된다. 동물이 얼굴 없는 고기가 되듯이, 살아남은 사람은 이름 없는 세입자가 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낡은 건물들이 건강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묶여있는 지금의 상황을 밀실로 보고 이 상황을 만든 거대한 범인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현장을 평면으로 포착하여 추적한다.

또한 이 작품은 방문자의 시각에서 우사단을 조명한다. 짧은 시간동안 머무는 방문자는 우사단을 순간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방문한 시간과 서 있는 위치 그리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우사단은 파편이 된다. 방문자가 가지는 우사단에 대한 파편화된 시각을 범죄 현장이 보여주는 손상된 증거와 파편으로 남은 흔적과 연결한다.

평면 속의 건물과 사람은 파편 또는 실루엣으로만 나타난다. 재개발이 거주자의 이름과 모습을 지우듯이, 방문자가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가기 때문이다.

평면에 그려진 장면들은 서로 만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한다. 이는 우사단을 보는 방문자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접혀 있던 건물의 입면을 펼치면 배경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장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같은 장소를 각도에 따라 전면과 후면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장면의 시간의 선후관계를 뒤섞기도 한다.

하늘 / 종이에 프린트, 2019

<Tangled Streets>

‘Tangled Streets’는 관객의 터치에 따라 우사단길의 상점과 스튜디오 건물들이 랜덤으로 배치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작업이다. 우사단길의 가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 왔다. 작업자 하은은 시간에 따른 가게들의 변화를 이미지로 기록하여, 관객들에게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가게들과 존재하는 가게들이 공존하는 거리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뒤얽힌 거리의 목격자로 만들고자 한다.

하은 /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2019

계(단)모임

김다예, 이주원, 전기원, 최수연

점차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나고 개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지속 가능한 마을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개념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개념의 마을이란 정해진 영역 내에서 고정된 주민들 사이에 만들어진 닫힌 커뮤니티에 가까우며, 현재 도시 내에서도 폐쇄적인 주민 모임이나 아파트 둘레로 높게 쳐진 담장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탈전통화하며 개인화되는 현대 도시에서 ‘마을’로 인식되는 공간적 범위는 개인마다 다르고 계속 변화하므로, 마을이라는 커뮤니티를 하나의 고정된 단위체로 규정하는 것은 더이상 유효한 방식이라 볼 수 없다. ‘마을’에 대한 이전의 해석에서 탈피해 집단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도시적 커뮤니티는 개인의 영역들이 중첩되는 곳에서 발생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 다양해짐에 따라 커뮤니티에 대한 수요도 다양한 형태로 생겨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커뮤니티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적 기반이 필요하다.

도시에서의 커뮤니티가 여러 개인들의 수요가 모여 생긴다는 것을 고려할 때 새로운 공공공간은 건물 단위의 큰 시설보다는 여러 규모로 쪼개져 주민들의 생활권 내 곳곳에 분산된 생활밀착형 시설로 존재해야 한다. 이런 시설들을 도시 속에 퍼뜨리기 위해 활용되지 않고 있는 공간들을 재사용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이때 중심적으로 쓰일 수 있는 요소가 수직동선으로, 모든 건물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공간임에도 실질적으로 쓰이는 시간이 매우 짧고 통과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수직동선 내부에 다양한 공간적 변형을 통해 머무를 수 있는 시설을 산발적으로 조성한다면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공공간의 다양성은 고정된 용도의 단일 건물을 조성할 경우에 비할 바 없이 넓어진다. 완전한 사적 공간이 아닌 공용공간이라는 점과 일반적으로 길에 면하여 생겨난다는 수직동선의 특성 또한 도시의 외부공간과 연계될 가능성을 높인다.

수직동선 공공화는 현재 저층주거지 도시환경 개선 맥락에서 시행되고 있는 리모델링활성화사업, 건축협정, 가꿈주택, 그린파킹 등 각종 도시재생사업들과 연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건축협정 과정에서 두 건물이 코어를 공유하는 형태로 계획하고, 건물 내 수직동선을 공공에 제공한다면 내부 공용공간을 공공이 유지·보수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의 추가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직동선 공공화를 유도할 수 있다. 사업의 주 타겟은 일정한 구조의 반복적인 계단실을 가진, 혹은 필요로 하는 다세대 건물들이지만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에서도 그린파킹·가꿈주택 사업 등의 가로환경 정비와 연계하여 옥상까지 주민들의 공유공간으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사업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개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스스로에게 필요한 커뮤니티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주체적이고 자생적으로 유지되는 다양한 규모의 도시 내 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다.

학교 사용 설명서

‘자율적 교육은 교사가 학생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며, 학생들이 자신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Shor 1992:20)

새로운 교육의 필요를 말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높아져 왔지만,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 교육은 여전히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유학기제와 같은 참여형 정책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배워야 할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은 채로 시행하는 이 같은 정책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는 힘들 것입니다.

미래의 교육은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한 자율적 교육입니다. 자율적 교육을 위한 물리적 공간은 주체적인 사고를 끌어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이 도구를 통해 학교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기존의 참여형 교육공간

학교를 설계하는 많은 건축가는 기존의 20세기형 중, 고등학교 공간의 대안으로써 학생참여 디자인과 공용공간 확보 등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하고 다양한 사용 행태를 의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간 제안이 자율적 교육 방식으로의 변화를 반영하는지, 혹은 이끌어내고 있는지는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여전히 학생 개개인이 공간에 개입하기는 어렵고, 실질적 교육공간은 기존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의 교육공간

새로운 교육공간은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변화해야 합니다. 학생 한명 한명은 학교를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하면서 교육에 대한 의견을 형성합니다. 또한 개인에서 시작하여 또래, 한 반, 학년 전체, 학교 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의 여론이 공간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규모의 커뮤니티는 개인의 선택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공간적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며,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여러 규모의 공동체와 정치적 의사소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조합할 수 있는 1인용 가구

새로운 교육공간을 위해 저희는 조합할 수 있는 1인용 가구를 제안합니다. 가구는 기존 공간구조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의견을 잘 반영합니다. 우선 1인용 가구이기 때문에 각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가구를 사용하는 것에서 공간 계획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벽, 계단 등의 건축적 요소의 규모로 조합할 수 있도록 하면 여럿이서 더 큰 공간을 계획하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가구의 조합 과정에서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목표를 형성하는 과정이 시각적으로 드러납니다.

자유학기제와 연계

현재 전국 중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유학기제는 대부분 오전 시간에는 교과 활동, 오후에는 자유 학기 활동을 하고, 방과 후 활동은 자유 학기 활동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제시하는 1인용 가구를 자유학기제 시스템에 도입한다면 더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함께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정 명수 이상 모이면 언제 어디서든 가구를 조합해 일시적인 교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때 교실 내로 한정되었던 수업공간은 복도, 로비, 운동장 혹은 교문 밖 지역사회까지 확장되며,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시간표를 편성하고 조정하면서 시간적 제약도 사라지게 됩니다.

애플리케이션 활용

어느 때보다 온라인 네트워킹에 익숙한 세대의 학교 교육에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만들거나, 홍보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는 식으로 개인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지식 습득의 경로를 안내해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관심 분야를 가진 학생들끼리 교류하도록 하여 상승작용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나가며

넌 너무 공간적이야

Q. 요즘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어떻게 인식할까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물리적인 상호작용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압축된 시간과 공간, 과다정보와 소셜네트워크의 시대에 의사소통은 공간적인 성질을 잃어버린 걸까요? 건축은 어떻게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유발할 수 있을까요? 이 공모전의 과제는 의사소통을 위한 이상적인 ‘방’을 만드는 것입니다. 상호작용이 더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에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어 보세요. 건축이 어떻게 의사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세요.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위한 공간에 대한 고민입니다. 저희는 의사소통을 유발하는 공간을 디자인하기보다, 의사소통이 곧 공간이 되는 방법을 제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사람의 신체는 그 자체로 공간적입니다. 사람이 몸을 움직여 만든 동작과 행위는 각각의 공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만드는 부피감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 없이는 인지되기 힘듭니다. 찬장에 머리를 부딪치거나 새로 고른 옷이 몸에 맞지 않을 때, 꽉 찬 엘리베이터에 몸을 구겨 넣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외부 세계와 구분되는 신체의 영역을 알아차립니다.

저희는 이런 인지를 통해 신체가 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간단한 놀이를 제안합니다. 바로 ‘이불속에 들어가기’ 입니다. 넓게 펼쳐진 이불 속에 한 사람이 들어가면 몸을 덮은 이불과 함께 신체의 영역이 느껴집니다. 팔과 몸통 사이나 이불이 드리워진 아랫부분은 공간이 남습니다. 두 명이 이불을 덮으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드러납니다. 두 사람이 자세를 바꾸면 사이의 공간도 바뀝니다. 서로의 몸짓을 통해 공간을 가지고 놀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이면 더 재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양한 공간을 이불을 통해 인지합니다. 사람들 간의 몸짓은 이 소통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습니다. 신체는 구조가 되고 이불은 외피가 되어 건축물을 이룹니다.

과나코 (2008-2029)

미래의 동물원은 어때야 할까요? 이 프로젝트는 그 질문에 대한 저희의 답입니다. 동물원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든 동물원의 동물들은 인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새로운 동물원을 제안하는 대신 동물원을 없애면서 동물을 가두기 위해 닫혀있던 동물원을 동물들의 묘지이자 공공의 공원으로 자연스럽게 바꾸어나가는 방법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공원이 될 동물원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에 대한 책임을 다합니다.

철창 속의 동물은 이미 야생성을 잃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그들을 자연으로 방류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일 뿐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동물원은 연구와 관찰을 빙자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가둬진 채 자라온 동물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합니다.

우선, 동물을 관람의 대상으로 삼는 모든 행위를 중단합니다. 사람들은 더는 동물들을 구경할 수 없습니다. 동물원에 살는 동물들의 수명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에 이릅니다. 남은 생애 동안 그들의 우리는 최대한 본래의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으로 조성됩니다. 숨을 거둔 동물들은 각자의 울타리 안에 묻힙니다. 묘지가 된 인공 서식지는 죽은 동물의 생활 환경을 설명해줍니다.

도시민에게 새로운 공공공간을 제공합니다.

동물원은 다양한 인공 서식지가 나열된 독특한 외부공간입니다. 넓은 외부공간이면서 도시의 다른 어떤 공간과도 다른 동물원을 점차 공원화하여 공공공간의 다양성을 확보합니다.

모든 동물이 다 묻힌 우리부터 공원이 됩니다. 온전한 묘지가 된 우리의 울타리를 따라 도시와 연결된 걷기 좋은 해자를 팝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얕고 넓은 해자를 파서 도시와 동물원의 경계를 흐리게 만듭니다. 처음 파는 해자는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할 정도로 깊고 한 사람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개방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해자의 깊이는 점차 눈, 어깨, 허리, 무릎 높이까지 얕아지고, 너비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넓어집니다. 사람들은 이제 해자에 걸터앉거나, 경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고, 벼룩시장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생겨난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해자의 형태는 훗날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던 동물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추측할 수 있도록 하는 흔적으로 남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합니다.

동물원의 기능이 제거된 채 묘지로 변한 새장, 돌고래쇼장, 오랑우탄 정글짐과 관람객 동선은 지난날의 위계적 질서를 기록하고 동물들의 희생을 기리는 장소가 됩니다.

사람들은 해자를 통해 도시로부터 동물원 안으로, 예전에는 관람객들이 걷던 땅으로, 다시 비석과 같은 문을 통과해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동물원이 있던 자리에 남겨지는 것은 동물을 위한 묘지이자 사람들을 위한 공원입니다. 사람들은 동물들 대신 스스로가 가득한 우리를 바라보게 됩니다.